지금까지 논의된 두 입장은 유럽을 설명하는 이론적 시각에도 반영이 된다.
통합과 차별화 중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유럽 통합에 대한 이론적 접근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통합의 목적이나 동인, 과정 그리고 통합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이론적 관점을 살펴보기 위해 유럽 통합의 역사적 과정을 뒤돌아 보면 흥미로운 특징이 발견된다. 오늘날 유럽 통합은 정치적 공동체, 연방제와 같은 정치 체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그 시작은 특정 산업 분야의 경제적 협력에서 시작되었다. 유럽 통합의 시발점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이 모여 이룬 유럽석탄철강공동체라는 일부 분야에 국한된 통합의 시도였지만, 이를 기초로 오늘날에는 모두 27개국이 참여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를 넘어서는 주요한 경제축으로 등장할 만큼 성장하였다.
유럽의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고려할 때, 우선 기능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통합을 설명해 볼 수 있다.
기능주의적 시각은 한 분야에서의 통합은 다른 분야로 확대되어 가고, 그러한 파급효과가 점진적으로 확산되면서 통합이 심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기능주의 이론은 통합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일단 시작된 통합의 움직임은 멈추어 서거나 후퇴하는 일 없이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낙관적 시각을 갖고 있다.
통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분야에서의 통합이 다른 분야로 확산되는 파급효과' 혹은 '전이 효과' (spill-over)이다. 이렇듯 파급효과가 생겨나는 원인은 사회 현상이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즉 한 산업 분야에서의 통합은 다른 산업 분야에서 통합의 필요성을 낳게 되고, 통합의 범 위가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기능적 연계는 통합의 심화로 이어지게 된다.
유럽 통합의 측면에서 본다면, 특정 산업 분야에서 유럽 국가들 간의 통합은 불가분 상호 의존성 증가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적 통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초기 유럽 통합을 이끌었던 모네, 슈만, 스파크 등 통합론자들은 이러한 기능주의적 시 각을 갖고 있었으며, 경제 공동체의 등장이 궁극적으로 연방제 형태의 유럽합중국이라는 정치적 공동체로 귀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에 회의적인 이들은 경제 통합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개별 국민 국가가 여전히 정책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한다.
즉 경제적인 통합이 관련 국가 상호 간의 의존성을 증대시키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정치적 통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통합 과정에서 개별 국가의 영향력과 역할에 주목하는 경우 유럽 통합은 개별 국가의 국가 이익과 긴밀한 연관을 갖게 되고 국가 간 협상 이 중요성을 갖게 된다. 현재 유럽연합 최고 정책 결정 기관은 회원 국가의 정상들이 모이는 유럽이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시각의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통합의 진전은 개별 국가의 이익이 서로 합치되는 최소한 공통분모를 발견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또 한 기능주의적 시각에서 경제 통합이 정치적 공동체의 탄생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과는 달리 개별 국가 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통합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가 주권을 포기하여 하나의 연방 국가 창설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즉 여전히 개별 국가의 국내 정치적 상황이 통합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통 합의 움직임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드골 이 1965~1966년에 공석 정책(empty chair policy)을 통해 유럽경제공동체의 모든 결정 기능을 마비시키면서 프랑스의 주장을 관철시킨 바 있으며, 1990년대 들어 영국과 덴마크가 국내 정치적 이유를 들어 마스트리히트 조약 내용의 일부에 대해 예외를 인정받은 것 역시 개별 국가의 국내 정 치적 요소가 통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예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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