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

통합된 유럽과 국민 국가

by 망고러버 2022. 12. 28.

유럽 강

 

유럽연합(EU)은 통합된 공동체를 꿈꾸었던 통합론자들의 이상을 많은 부분 충족시켜 주고 있다.

1957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창설과 함께 서유럽 6개국 간에 이루어졌던 석탄·철강 분야에서의 제한적 경제 협력은, 이제 동서 유럽을 포괄하여 27개국으로 이뤄진 인구 5억에 육박하는 거대한 단위로 확대·발전하였다. 유럽연합의 총생산은 명목 가치로 보 았을 때 세계 경제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거대한 수준이다. 유럽의 통합은 경제적인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이미 많은 부분이 이루어졌고, 외교·국방분야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반세기가 조금 넘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달성된 유럽 통합의 성과를 보면 하나의 공동체로서 유럽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갖게 하며, 궁극적으로 하나의 국가와 같은 형태, 즉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의 등장도 가능해 보인다. 사실 정치적 공동체의 꿈은 초기 유럽 통합을 이끌었던 인물들의 이상이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장 모네(J. Monnet)는 주권의 자발적 양도를 통한 초국가적인 중앙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사실 유럽연합은 그 조직을 보면 하나의 국가처럼 보인다. 유럽연합의 주요 상설기구로는 집행위원회, 유럽의회, 유럽법원, 유럽중앙은행 등을 들 수 있다.

개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통치 기구가 갖춰져 있는 셈이다. 이들 기구는 유럽연합 개별 회원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성을 갖고 움직이는 초국가기구(supranational institution)인데, 다시 말하자면 국가 위에 존재하는 기구인 셈이다. 또한 유럽연합 회원국의 정상이 서명하고 각국 의회나 국민의 동의를 얻어 발효된 각종 조약은 개별 국가법령에 우선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유럽은 이제 거의 하나의 통합된 정치 조직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유럽합중국의 출범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기존의 유럽연합 체제를 연방 국가와 비교하는 학자들이 있으며, 유럽의 연방화를 우려하는 반발과 비판의 강한 목소리는 이러한 현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외면적인 통합의 진전과 심화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현시점에서 유럽의 정치 통합이 짧은 기간 내에 완성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럽 정치 통합의 완성은 모네의 말대로 주권의 양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개별 국민 국가가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고 초국가적 기구의 통치에 종속되는데 동의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권 약화에 대한 우려로 인해 유럽의 통합은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갈등을 겪어 온 것이 사실이다. 유럽 각국의 정부가 공동체의 참여 또는 통합의 심화를 추진하였을 때, 각국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이것이 주권의 상실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통합 반대론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곤 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두 차례의 국민투표가 모두 부결되었다. 덴마크 역시 국민투표에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거부되었고, 조약 내용에 대한 선택적 탈퇴(Opt-out)를 허용받은 뒤 다시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간신히 이를 비준받았다. 영국 역시 유럽 문제가 1990년대 보수당 정부의 내분을 불렀고, 1997년의 선거 패배에도 영향을 끼쳤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