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분열과 다툼은 역사적으로 어느 한 국가가 군사적으로 우위에 서는 경우 그 군사력에 의해 유럽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는 하였다.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이라든지 히틀러의 제국 건설의 꿈은 모두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나폴레옹은 영국과 러시아를 복속시키지는 못했지만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자신의 군사적 통제하에 두었다. 히틀러 역시 막강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때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이와 같은 군사적 수단에 의한 통합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전쟁을 통해 유럽인들은 진정한 통합의 필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히틀러의 침략은 이에 맞서 함께 투쟁한 유럽인들에게 서로 연대감을 느끼게 하였고, 유럽 재건을 위해서는 국가 간 국경선을 철폐하고 유럽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하였다. 이들은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와 민족적 자만을 전쟁의 근본 원인으로 비판하고, 유럽을 하나의 이해관계 속에 묶어 놓음으로써 평화를 보장받고 공 통의 이해관계 속에서 안전과 번영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유럽 통합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유럽 통합의 또 다른 요인은 국제 정치적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1차, 전쟁이 끝났을 때 유럽은 승. 패전국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폐허의 상태가 되었다. 과거 세계의 중심이었던 유럽은 이제 전쟁을 통해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어갔고,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정치 질서하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럽이 세계사의 중심 무대에서 밀려난 현실을 자각하면서, 유럽인들은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유럽의 독자성과 일체감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는데, 유럽 통합은 바로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었던 셈이다.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가 무너진 오늘날 통합된 유럽은 국제 사회에서 이전보다 커다란 영향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으며, 미국·일본에 맞서는 경제 중심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이 통합을 추진할 수 있었고 또 통합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럽의 동질성, 즉 문화적 공동체로서의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즉 오늘날 유럽 문화의 뿌리가 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와 중세 유럽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기독교가 통합된 공동체로서 유럽의 재건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어윈(D. Urwin)의 말을 빌리면,
"유럽 통합의 모델을 고대 로마 제국에서 찾고 있다. 로마 제국은 문명화된 유럽 전체를 통합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들을 매료시킨 것은 바로 통합을 통하여 문명이 유지된다는 관점이었다. 즉 로마 제국의 형성과 함께 통합된 유럽 기독교 사회가 평화 속에서 성립되었으며, 외부의 약탈과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효과적으로 방위할 수 있 게 되었다는 것이다. 통합의 가장 큰 가치는 전쟁의 방지와 평화의 유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초기 유럽 통합 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의 주제이기도 했다.”
유럽 통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이 추진력을 갖고 진행되어 왔지만, 그 이전 많은 사상가들이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꿈꾸어 온 유럽 통합은 유럽 문명의 보호·유지를 위한 통합, 곧 통합된 공 동체로서의 유럽으로 복귀라는 오랜 이상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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