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방위공동체(EDC)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유럽 통합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더욱이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자유화 조치에 의해 서유럽 국가 간 교역량은 급속히 증대되었다. 유럽 통합의 노력과 함께 보다 자유화된 시장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동 시장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1955년 6월 이탈리아 메시나(Messina)에서 열린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분야를 피해 경제 분야에서 유럽 통합을 보다 심도 있게 추진하기 위한 공동 기구 창설 방안이 모색되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하기 위한 정부 간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모네와 함께 유럽 통합에 적극적이었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하나로 벨기에 외무장관이었던 스파크(Paul-Henri Spaak)가 이끌었기 때문에 스파크 위원회라 고 불린다. 스파크 위원회는 1956년 4월 제출한 최종 검토 보고서에서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European Atomic Energy Community)의 창설을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ECSC 전체 회의와 ECSC 회원국 6개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모두 승인되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스파크 보고서를 기초로 두 개의 새로운 공동체 구성을 위한 협상에 나섰다. 유럽원자력공동체의 설립이 논의된 것은 원자력이 향후 석탄을 대신할 자원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석탄·철강의 공동 관리를 위한 ECSC의 설립과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Euratom의 설립이 논의된 것이었 다. 당시 원자력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앞섰던 프랑스는 특히 유럽원자력공동체의 설립에 적극적이었으나 역내 자유 경쟁과 공동 시장 창설에는 소극적이었다. 프랑스는 공업 분야에서 서독의 지배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독은 프랑스의 주도하에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이는 유럽 원자력공동체 설립에는 소극적이었으나 경제공동체 창설에는 적극적이었 다. 스파크 보고서에서 이 두 개의 공동체 설립을 동시에 추진하도록 권고한 것은 바로 프랑스와 서독의 입장 차이를 고려한 때문이었다.
특히 프랑스는 애초에 경제공동체 설립에 부정적이었지만, 농산물 분야에까지 공동 시장 확대, 프랑스 해외 영토에 대한 발전 기금의 지원, 그리고 남녀 동등임금, 장기 유급 휴무제 같은 프랑스 사회 법안의 수용 등을 전제로 두 공동체의 창설을 지지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프랑스의 많은 요구를 다른 국가들이 수용한 것은 EDC의 좌절에서 보듯이 프랑스 제4공화국 정부의 허약함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스파크 보고서가 제출되기 직전인 1956년 7월 프랑스 의회 선거에서 유럽 통합에 반대해 온 드골파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대신 친 유럽적인 사회당의 볼레(G. Mollet) 정부가 들어섰는데, ECSC에 참여한 다른 5개국은 정치적으로 취약한 몰레 정부의 유럽 통합 정책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프랑스에 많은 양보를 했던 것이다. 한편 이탈리아는 공동체 내의 낙후된 지역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유럽투자은행(EIB)의 설립을 주장하였는데, 실제로 이 기구의 설립 이후 이탈리아는 유럽투자은행의 가장 큰 수혜국이 되었다.
이러한 협상의 결과로 유럽경제공동체는 출범과 함께 3개의 기금을 설립하였다.
프랑스가 요구한 근로자의 고용 기회 확대와 생활 수준의 향상을 위한 유럽사회기금(ESF. European Social Fund)과, 프랑스의 해외 영토 발전에 그 목적을 둔 유럽개발기금(EDF. European Development Fund), 그리고 이탈리아가 주장한 낙후 지역 개발을 위한 유럽투자은행(EIB: European Investment Bank)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유럽사회기금의 설립은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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