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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슈만 플랜과 유럽석탄철강공동체 -2

by 망고러버 2022. 12. 31.

유럽 어느날

 

서독의 입장에서 볼 때도 슈만 플랜은 수용할 만한 제안이었다.

무엇보다 프랑스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베를린 봉쇄에 서 보듯이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놓여 있는 서독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서유럽과 강하게 연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독일연방공화국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외교 정책의 자율성이 사실상 제약되어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와 대등한 입장으로 협상에 참여한다는 것은 서독의 외교적 주권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슈만 플랜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로 구체화되었다.

모든 서유럽 국가에게 참여를 권했지만 실제로 참여한 국가는 프랑스와 서독을 비롯하여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 베네룩스 3, 그리고 이탈리아까지 모두 6개국이었다. 이 유럽석 탄철강공동체(ECSC)의 출범이 갖는 중요성은 이 기구가 OEEC 등의 기존 기구와 같은 정부 간 협의 기구가 아니라 특정 정책에 대해 개별 국가의 주권을 일부 이양한 초국가적 기구의 성격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즉 서유럽의 석탄과 철강 생산이 관련 국가의 정부뿐만 아니라 개별 국가의 감시· 감독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초국가적 권위체의 공동 관리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유럽석탄 철강공동체는 경제적으로 공동 시장을 이루고 정치적으로는 초국가적 통합으로 가는 유럽 통합 역사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1957418일 파리에서 참여 6개국 대표에 의해 서명되었고 이후 각국 의회에서 비준되었다.

파리 조약은 초국가기구의 권한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통합의 방식에 있어서 진일보한 형태였지만, 그와 동시에 개별 참여 국가의 의견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타협적인 것이었다. 회원 각국은 석탄 및 철강 분야에 대한 주권을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고위관리청(High Authority)6년간 이양하기로 하였다. 즉 석탄·철 강과 관련된 개별 국가의 주권을 초국가적 기구에 이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함께 개별 국가의 견해를 반영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 두 가지 기구를 동시에 마련하였다. 하나는 각국의 장관들로 구성되는 각료이사회 (Council of Ministers)였다. 각료이사회는 사실상 ECSC의 최고 결정 기구로 기능하였고 이는 ECSC의 초국가적 성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와 함께 각국 의회 의원들로 구성되는 공동의회(Assembly)를 설치하였는데, 공동의회에는 고위관리청의 집행부를 불신임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공동의회의 의원은 모두 78명으로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에는 18명씩, 벨기에와 네덜란드에는 10명씩, 그리고 룩셈부르크에는 4명이 각각 할당되었다. ECSC의 또 다른 중요한 기구는 유럽법원(European Court of Justice)이다. 유럽법원은 공동관리청의 결정과 행위에 대한 적법성을 판결하였고, 조약의 해석을 통해 각국 정부의 개별적 행동의 견제와 공동체의 분쟁 해결을 가능하게 하였다. ECSC의 기구 구성은 오늘날 유럽연합 체제의 기초를 이루었다.

 

ECSC의 목적은 석탄과 철강의 공동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회원 각국의 관세를 포함하여 자유로운 교역에 장애가 되는 각종 제도 및 법률을 모두 제거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에, 정부 간 협의보다는 초국가적 권위를 가진 기구의 감독·감시가 보다 효율적이다. 따라서 ECSC의 운영은 고위관리청의 활동과 집행에 크게 영향받았다. 고위관리청의 집행부는 모두 9명으로 구성되었는데,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등 3개국은 2명의 위원을 임명하였고 나머지 베네룩스 3국에서는 1명씩을 각각 임명하였다. 슈만 플랜을 기초하였고 오랫동안 유럽 통합에 노력해 온 장 모네가 초대 위원장이 되었다.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각국의 분담금에 의존하지 않고 석탄 및 철강 생산과 관련된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하였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는 교역을 장려하고 생산을 자유롭게 하였으며, 석탄·철강 산업의 발전과 현대화에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경제적 부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앞서 지적하였지만 ECSC는 단순히 경제적인 면에서 석탄과 철강의 공동 시장 건설만을 의도한 기구는 아니었다. 정치적·군사적 계산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그 길로 향하는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그런 점에서 초 국가적 성격을 갖는 고위관리청의 설립은 향후 유럽 통합이 나아가게 될 발전의 방향을 제시해 준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ECSC의 또 다른 초국가 적 기구인 유럽법원은 ECSC의 운영과 관계된 각종 문제 및 불만을 판결하는 임무를 맡았다. 판결을 집행할 강제적인 수단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법원의 결정은 대체로 수용되었고, 이에 따라 통합의 원칙을 규정하는 권위 있는 판례 및 결정이 축적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ECSC의 운영은 통합의 한계도 명확하게 보여 주었는데, 관세나 쿼터의 철폐만으로 공동 시장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졌기 때문이다.

관세나 쿼터 이외에도 각 회원국 간의 자유로운 교역을 어렵게 하는 여러 가지 제도·정책 · 관례 등이 존재하고 있었고,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종종 비협조적인 정책을 계속 유지하였다. 따라서 공동 시장 혹은 보 다 통합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ECSC의 통합 수준을 넘어서는 새로 운 형태의 조약이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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