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합중국이나 국제기구로 보는 두 가지 시각에서 나타나는 이런 문제 점을 극복하기 위한 최근의 새로운 견해는 유럽 통합을 다층 정치 구조 (multi-level governance)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즉 종적으로 두 개 이상의 정치 단위가 중복적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초국가적 기구로서의 유럽연합과 개별 국민 국가라는 이중적인 통치의 단위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시각이다. 이러한 견해는 과거 고유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주권 국가의 기능이 유럽연합과 같은 초국가기구에 의해 수행되는 현실 속에서 '국가'에 대한 전통적 개념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즉 유럽연합 내 개별 국가의 정부는 자국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 는 정책의 결정과 집행 분야에서 여전히 주요한 행위자이지만, 동시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법원, 유럽의회 등 초국가기구의 활동에 의해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유럽연합은 국가와 초국가적 단위가 상호 종속되어 있고,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행사 하고 있으며, 중복되는 권한을 가진 체제인 셈이다. 그리고 국가는 더이상 국내 정치와 국제 관계를 연결하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연결 고리가 아닌 셈이다. 이러한 구조 가운데 살고 있는 시민들의 정체감과 충성심 역시 배타적이기보다 상호 보완적 경쟁적이다. 즉 프랑스 인이면서 동시에 유럽 인이 될 수 있으며, 스코틀랜드인이며 동시에 영국인이고 또한 유럽 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한 국가를 구분하는 영토는 독점적이고 배타적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유럽 통합의 진정한 의미는 국가와 초국가적 기구의 대립이 아닌 양자 간의 유기적 연결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체제가 등장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다층 정치 구 조의 의미는 초국가-국가-지역-지방 등 다양한 영토적 층간에 존재하는 정치 기구들 사이에 지속적인 협상과 타협을 통한 통치 행위의 체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다층 정치 구조라고 하는 새로운 인식의 틀 속에서 최근에는 두 가지 이론적 경향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경향은 정책 공동체, 쟁점 네트워크 및 인식 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서 유럽의 다양한 정책을 설명하는 시도이다. 실제로 다층 정치 구조 아래 정책이 형성되는 과정은 다양한 층의 정책 담당자들이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정책 공동체(policy community)의 특징은 제한된 수의 정책 담당자들이 장기간 밀접한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점이며, 이들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의 가치관의 공통점이 존재하며 보유하고 있는 정책 자원에 있어 평등한 편이고 권력과 영향력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균 형 잡힌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이와는 약간 다른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 쟁점 네트워크(issue network)인데 구체적으로 네트워크의 참여자는 정책 공동체보다 훨씬 다양하고 그 수가 많으며, 또 참여의 구성은 쉽게 변화한다. 네트워크 구성원 간의 상호 관계도 시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이들 사이에는 공통된 가치관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끝으로 쟁점 네트워크의 구성원 간에는 보유 자원이나, 권력, 영향력 면에서 모두 큰 불평 등이 존재한다. 유럽연합과 같은 다층 정치 구조에서는 이러한 정책 공동 체 또는 쟁점 네트워크와 같은 정책 집단의 구조적 성격이 정책 형성은 물론 그 집행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럽 집행위원회를 비롯한 유럽연합 기구들은 전통적인 국가와 같은 방대한 관료 조직 즉 행정 집행 기구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회원국 및 지방의 정부에 대한 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책 공동체 또는 쟁점 네트워크의 연장선에서 발전한 이론적 경향으로 인식 공동체(epistemic community)를 열거할 수 있다.
인식 공동체란 특정 분야나 쟁점에 있어 사회에서 인정받는 권위와 전문성을 자랑하는 전문가의 네트워크를 지칭하는데 이러한 인식 공동체가 국제적인 차원에서 형성되어 있을 경우 이들은 국가의 이익을 정의 내리고 국가의 정책 선호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곤 한다. 결국 국가의 이익이라는 것은 어떤 절대적 기준에 의거하여 정의 되기 보다는 특정한 시각과 인식 또는 사고의 틀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떤 인식 공동체가 특정 정책 영역을 지배하는가는 정책을 연구하는데 핵심적인 고리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 차원에서 통화 통합을 추진하는데 각 회원국의 경제 재무 정책 담당 부서와 중앙은행, 그리고 언론과 연구 기관 및 학계에 포진하고 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과 통화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의 역할은 정책 추진에 막강한 힘을 실어 주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 통합의 이론적 이해 -5 (0) | 2022.12.30 |
---|---|
유럽 통합의 이론적 이해 -4 (0) | 2022.12.29 |
유럽 통합의 이론적 이해 -2 (0) | 2022.12.29 |
유럽 통합의 이론적 이해 (0) | 2022.12.28 |
통합된 유럽과 국민 국가 -2 (0) | 2022.12.28 |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