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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 -3 전체적으로 보아 EEC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유럽경제공동체 내부의 교역량도 증가하였고 공동체 외부 국가와의 교역 규모도 커졌다. 이러한 성과는 부분적으로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서유럽 의 경제 분이라는 우호적인 경제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경제 성장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감이 EEC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 밖에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 분위기도 EEC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프랑스와 독일 국경 지대의 석탄, 철광 산지인 자르지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사실상의 식민지처럼 자국의 영향권 아래에 두었으나, 1955년 10월 지역 주민 투표를 통해 서독에 귀속시키기로 결정했고 이듬해 서독 영토로 합병되었다. 프랑스와 독일 간의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 2023. 1. 2.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 -2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 조약은 1957년 3월 25일 로마에서 체결되었다. 유럽원자력공동체 조약의 서문에는 유럽의 평화와 번영 peace and prosperity)이라는 유럽 통합의 목적을 설명하는 핵심적 단어가 포함되었으며, 유럽경제공동체 조약의 서문은 이 새로운 공동체가 유럽 국민들 간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연합(an ever closer union among the peoples of Europe)을 향한 중요한 진전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로마 조약(Treaty of Rome)으로 불리는 이 새로운 공동체의 창설은 그 이전의 실패한 유럽방위공동체 계획과는 달리 프랑스 의회에서 맨 처음 비준됨으로써 순조롭게 출범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이처럼 쉽사리 비준된 것은 1956년의 이집트 수.. 2023. 1. 1.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 유럽방위공동체(EDC)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유럽 통합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더욱이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자유화 조치에 의해 서유럽 국가 간 교역량은 급속히 증대되었다. 유럽 통합의 노력과 함께 보다 자유화된 시장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동 시장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1955년 6월 이탈리아 메시나(Messina)에서 열린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분야를 피해 경제 분야에서 유럽 통합을 보다 심도 있게 추진하기 위한 공동 기구 창설 방안이 모색되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하기 위한 정부 간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모네와 함께 유럽 통합에 적극적이었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하나로 벨.. 2023. 1. 1.
방위 정책과 통합 -2 1953년 4월 서독 수상 아데나워(K. Adenauer)는 미국을 방문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서로 통일된 외교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 가운데 유럽공동군을 창설하는 일은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서독의 독자적 군대 보유를 막겠다는 목적을 가졌던 플레뱅 계획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지만, 동시에 외교 정책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입장의 통합 없이 국방과 같은 중요 분야의 권한을 (부분적이라도) 초국가적 기구에 이 양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국방, 안보, 공동 외교 정책과 같은 예민한 문제는 통합의 최종적 단계, 즉 상호 신뢰와 확고 한 정책 통일이 이루어진 이후에야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인 것이다. 사실 공동방위 정책은 단일 화폐의 출범이나 국경 정책 등 .. 2023. 1. 1.